나의 버킷리스트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엔 영등포 노숙자쉼터에서 밥퍼 봉사를 한다.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는 봉사다.
처음엔 그냥 밥만 퍼주면 된다는 말에 시작했는데 지금은 봉사에 사랑을 더하고 또 나눔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쉼터에 온 분들은 대부분 밥을 먹은 후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냥 돌아가곤 하는데, 어느 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드러낸 분이 나에게 다가와 너무도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며 다시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한 후 “밥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그 후에도 봉사를 나갈 때면 그는 늘 깍듯하고 진심어린 태도로 거듭 인사를 전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는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몇 달이 지난 후 밥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벗은 그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되었다. 보는 순간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 

  IMF를 겪으며 운영하던 큰 사업체가 부도 난 상황에서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끝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인해 구속까지 된 사람이었다. 이후 형이 확정되고 수용생활을 할 때 자주 상담을 하던 생각이 났다. 
“출소하면 가족으로부터라도 인정받기 위해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여기에서 만날 줄이야.....반가움과 놀라움으로 맨붕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자연스럽게 그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가 말했다. 처음 이곳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당황했다고. 출소할 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고. 
 그는 “지금은 비록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고 있지만 떳떳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쉼터에서 만난 그는 내게 말했다.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가족들과 다시 만나면서 이곳에서는 더 이상 식사를 안 하게 되었다며 “그동안 고마웠고 많은 힘이 되었다”라고 인사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힘내라며 용기와 사랑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순간순간의 짧은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곤 한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감사로 이어지고 이러한 감사가 쌓이게 되면 결국에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그와의 만남은 깨닫게 하였다.

  인치견 (법무부 교정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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