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교도관 생활에의 회고

최근 영화 기생충으로 연기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던 모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로 추정된다는 언론의 보도가 뒤따랐으니 더욱 마음이 처연해졌다.
되돌아보면 공직에 들어 와 지방에서 초임근무를 하던 내 젊은 날은, 대부분의 가정이 연탄을 이용하여 난방과 취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총각의 자취방 연탄불은, 퇴근시간이 일정치 못해 툭하면 갈아 줄 시간을 놓치니 불씨가 사그라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행히도 착화탄(번개탄)이라 불리우는 유용한 불쏘시개가 있어 연탄불을 지피고 겨울을 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었다.

검고 육중한 두께의 연탄에 열기를 전파하여 손쉽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번개탄의 그 강한 연소와 푸른 불빛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의 삶에도 이런 불쏘시개들이 있어, 험한 세월의 무게로 기력을 잃은 사람들의 그 추운 마음과 시간들을 삽시간에 데워 일으켜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었다. 
또한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내가 마주쳐 갈 수많은 수형자들 중 그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번개탄 같은 뜨거움으로 다가들어 결빙된 그 마음을 데워줄 능력과 사명감이 과연 내게는 있을지 늘상 스스로를 채근하며 돌아보곤 했었다.

그렇듯 꺼진 불도 살려내던 번개탄이 오늘에 이르러 멀쩡한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로 돌변되기에 이르렀으니 황당하고 허탈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후퇴의 유서를 고작 그까짓 연기 속에 흘려버리고서야, 필시 지니고 갔을 억울함과 원통함은 대체 무엇으로 잠재우랴. 
태우고야 말 번개탄이었다면 차라리 스스로의 마음에 지펴 그 푸른 불길의 뜨거움으로 상실과 아픔의 자리를 이 악물어 지지고, 오히려 삶의 열정을 되살릴 일일 것을….

자살을 유인하는 외롭고 지쳐버린 삶, 슬픔이 온통 가슴을 옥죄는 삶이라면 기실은 교도소에 다 모여 있으렸다. 명예도 이름도 다 망가져 버렸고, 기약할 미래도 불확실한 수형자들이야말로 언제나 긴장을 유발시키는 자살예비군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번개탄이 아니더라도 자살할 방법과 도구는 어디에나 산재했다. 그리하여 교정시설에서는 수형자들이 기거하는 거실을 수시로 점검하여 끈, 쇠붙이 등 자살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수거하고, 문제 수용자들에 대해서는 상담. 순찰 등의 제반대책을 강구, 시행하여 왔었다.

지금도 그러하리라 짐작되지만 내가 교정본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의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로 인구 10만 명당 31.7명에 이르렀으니,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에 비해 거의 3배에 육박하고 있었다.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삶이라 했건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이들이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손쉽게 죽음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정시설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무심해질 삶의 조건이라면 몇 배는 더했으면 더하였을 터이리라.
그러나 결코 두 손 놓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2008년도의 자살 사례를 철저히 분석. 검토한 후 2009년에는 연초부터 전 직원이 마음먹고 달려들어 자살사고 반감을 위해 땀을 흘렸었다. 요시찰자에 대한 음악, 미술 치료 등 자살예방 교육의 시행도 중요했으나 가장 확실한 자살예방 대책은 무엇보다도 발생 시의 즉응조치에 있었다. 

야간 근무자 모두에게 휴대용 칼을 소지토록 했다. 간단없는 순찰을 행하고,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하는 자를 발견할 경우 즉시 끈을 자르기 위해서였다.
그 효과는 대단하여 그 해 자살을 기도한 수형자 115명 중 105명을 사전 발견하여 예방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의 직전에 찰나의 기지로 그 생명들을 살려낸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캄캄한 밤 순찰 중에 목매단 재소자를 발견하여 끈을 잘라내 바닥에 뉘어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는 일은 그야말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심약한 직원은 그런 일을 한번 겪으면 직업적 회한에 도리질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지고 떠나기도 했었다.

어쨌든 온몸을 던지는 교도관들의 활약으로 그해 교정시설의 자살률은 오히려 일반사회보다 훨씬 낮은 인구 10만 명 기준 20명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선진 어느 나라 교정시설보다 수형자의 자살률이 현저히 낮았으니, 자살 공화국이라 일컬어지던 나라의 오명을 대
한민국의 교정행정이 조금은 덜어준 듯해 마음이 기꺼웠었다.
인간의 생명이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고 보면, 더러 이해할 수없는 일상의 일들로 생각이 무너지고, 옥죄어 오는 슬픔에 마음을 잡기가 힘들더라도 그 시간과 손을 잡고 인생을 타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오늘날 일반사회는 물론, 교정시설에 까지 확산되어 수형자들에게 삶의 본질과 본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확산, 고양시켜 주는 감사나눔신문의 감사나눔 운동이 좀 더 일찍 우리에게 찾아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혹여 지금 이 시간에도 삶을 배반하려는 나약한 이들이 있다면 말해 주고 싶다. 잠이 깨면 악몽은 쉽게 잊혀 지리라고.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 현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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