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

 

어느 산골 마을에 화상으로 일그러진 할아버지 한 분 살고 계셨다. 일찍 아내를 여의고, 어린 자매, 혼자의 몸으로 도저히 돌볼 수 없어, 그 자매들을 보육원에다 맡겼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보육원에 찾아갔을 때였다. 자매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흉측스럽기가 그지없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창피하다며 몇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아버지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보육원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자식이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아버지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서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세월이 흘러, 자매들은 보육원을 나와 결혼도 하고 각자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고향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매는 마지막 가시는 아버지를 모른 척 내버릴 수는 없었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자매는 평소 아버지가 쓰시던 이부자리와 옷가지랑 유품들을 정리해 마당으로 가져 나와 불을 지폈다. 구두에 양복 한 벌 없는 아버지의 유품은 너무 단출하기만 하였다. 해진 신발과 옷가지를 불 속에 던져 넣고, 마지막으로 보자기에 싸인 공책 묶음 같은 것을 불속에 던져 넣었다.

보자기가 불에 타버리자, 이내 드러난 공책 위에는 비망록이라고 쓰여 져 있었다. 자매는 불에 타는 공책을 얼른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읽다가, 이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여보. 그날 내가 당신을 먼저 업고 나왔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나를 용서하구려,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오. 당신 덕분에 자매들은 모두 무사하다오. 오늘따라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구려. 저 하늘에 가서 당신께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할까 하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어미 없이도 잘 자라주어서 너무 고맙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마지막 한 가지 부탁이 있단다. 나는 불이 너무 무섭단다. 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아다오.”

이미 아버지는 화장을 한 다음, 뒷산에 뿌려진 뒤였다. 그동안 자신을 버린 아버지라고 원망만 하고 지냈던 그 아버지가, 바로 이 두 자매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 자매는 망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매들이 아버지를 만났을 적에 아버지의 사연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았다면, 화상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을 깨우쳤을 것이다. 아니, 평소 아버지가 살아계셔 감사하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지 않을까. 

노희석 (시인, 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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