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건강

봄이 온다는 건 산천이 푸르게 바뀌어 간다는 걸 뜻한다. 상록수 사이에 있던 활엽수들이 싹을 내기 시작하고, 거무튀튀한 들에도 푸릇푸릇 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의 원천인 광합성이 활발하게 시작된다는 걸 알리는 푸른색들의 잔치, 그걸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생기가 돌며 더욱 큰 기운을 얻기 위해 들로 숲으로 나들이를 간다. 더 가까이 봄을 느끼면 더 큰 생명의 에너지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 의욕 넘치는 삶이 펼쳐질 것 같아서다.

눈으로 보는 봄도 건강하지만 맛으로 보는 봄도 건강하다. 그래서 봄이 되면 냉이, 달래, 취나물, 씀바귀 등이 식탁에 올라와 기력을 돋우어준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풀은 냉이일 것이다. 그 어디에서든 강한 생명력으로 잘 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많아서 흔해서 쌀쌀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있어서 냉이를 즐겨 먹기도 하겠지만, 냉이에는 단백질과 비타민C, 칼슘, 철분, 인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춘곤증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동의보감>에서는 냉이가 간을 튼튼하게 해주고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해 주는 등 피로회복과 숙취에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봄에 보이는 냉이가 여러모로 사람에게 기력을 준다는 것인가?

냉이는 두해살이 풀로 5~6월에 십자 모양으로 4개의 꽃잎을 피우고 이후 꽃이 지면서 하트 모양의 납작한 열매가 만들어진다. 열매가 익으면 터져 안에 있던 씨가 바닥에 떨어지거나 날리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싹을 피운다. 그러니까 봄이 되어서 냉이가 푸른 잎을 보이는 게 아니라 이전해 가을부터 나오기 시작한 잎들이 겨울 내내 땅에 움츠려 있다가 햇살이 강해지는 봄에 생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 냉이가 눈에 안 보인 건 낙엽들에 가려져 있거나 푸른색이 아니었거나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이가 이른 봄 온힘을 다해 싹을 키워나가는 건 광합성을 열심히 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인데, 꽃을 피우게 되면 뿌리와 잎의 영양분이 꽃으로 가고, 꽃이 지고 나면 또 모든 영양분이 열매로 가게 된다. 번식과 대물림이라는 생명들의 존재 이유를 실천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우리들 눈에 띄게 되었고, 다른 시기가 아닌 이른 봄에 먹어 보니 겨울을 이겨낸 생명 에너지를 우리가 얻게 되는 걸 알게 되어 봄 냉이는 들판의 보양식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게 냉이가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는 것이다. 캐서 먹고 나면 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못 먹는 냉이의 꽃과 열매가 아니라 튼실하게 겨울을 난 냉이의 뿌리와 잎만 필요했던 것이고, 실제로 꽃이 핀 냉이는 뿌리와 잎이 질겨서 먹기 곤란한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냉이처럼 이른 봄 푸르게 싹을 키워나가는 식물을 로제트 식물이라고 한다. 로제트(Rosette)는 장미 로즈(rose)에서 나온 프랑스 말로 잎들이 장미꽃처럼 넓게 펼치면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로 방석식물이라고도 한다. 방석을 펼치듯이 잎들이 자라기 때문이다.

로제트 식물들이 땅과 밀착해 자라는 건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서고, 겹치는 잎들도 있지만 겹치지 않게 뻗어서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서고, 땅에서 오르는 지열로 보온을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보다 큰 식물들이 잎을 내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으면 꽃을 빨리 피워 봄에 활동하기 시작하는 곤충들을 빨리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번식과 대물림이라는 본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냉이처럼 작은 풀들이 피워내는 꽃들은 작다. 서서 걸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로제트 식물들의 꽃을 보려면 쭈그리고 앉거나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한다. 몸이 불편해지지만 작은 꽃들이 보여주는 생김새와 색감은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니 숲으로 가는 길에서 잠시 멈춰 겸손의 자세로 식물을 보면 더 멋진 봄이 올 것이다. 눈으로 입으로 받는 로제트 식물의 선물이다.

김서정 기자(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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