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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가 특집으로 마련한 '고려거란전쟁' 사극이 막을 내렸다. 고려가 거란을 상대로 펼친 드라마를 보면서 고려 역사를 관심 있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거란전쟁은 2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1차 전쟁(993)에서 거란이 침입하였으나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는 성과를 올렸다. 2차 전쟁(1010-1011)에서 거란 황제는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여 개경을 함락시켰지만 고려 황제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 가는 바람에 붙잡히지 않았다. 거란 황제는 고려 황제가 “친조 하겠다”는 약속을 명분 삼아 물러갔다. 3차 전쟁(1018-1019)에서 거란의 총사령관 도통 소배압이 ‘고려 황제의 친조 약속 불이행’을 문제 삼아 10만 정예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3차 전쟁 때 고려군 총사령관은 강감찬 장군이다. 당시 강감찬의 나이는 얼마였을까. 71세였다. 그는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강감찬의 지략과 경륜을 믿고 ‘상원수’라는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겼다. 고려는 20만 8,300명의 군대를 소집하여 대비했다. 

고려는 2차 전쟁을 겪으면서 거란이 다시 쳐들어오리라는 예상을 하고 준비했다. 강감찬은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었다. 거란군의 계획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보았다. 고려군은 흥화진에서 기다렸다. 강감찬은 강 상류에 막아두었던 강물을 터뜨려 혼란에 빠진 거란군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했다. 거란군은 패배에 개의치 않고 고려 황제가 있는 개경으로 달려갔다. 
 
“황제를 붙잡아라.” 소배압의 전략이었다. 그는 고려군은 이미 전방에 배치되어 있으므로 개경에는 군대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적장의 전략을 간파한 강감찬은 김종현 장군에게 군사 1만을 주어 개경을 향하도록 했다. 소배압은 쉬지 않고 남하하여 개경과의 거리는 40km에 지나지 않는 지점에 이르렀다.

강감찬은 고려 황제에게 개경을 떠나 피신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현종은 “짐이 떠나면 백성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라며 함께 싸우겠다며 정공법을 선택했다. 현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려군도 마찬가지였다. 황제가 적에게 붙잡히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김종현 장군의 1만 병사는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와서 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배압은 고려군의 준비 상항을 파악한 후 눈물을 머금은 채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감찬 장군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순순히 돌려보낼 수 없었다. “전쟁을 여기서 반드시 끝내야 한다. 다시는 고려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비했다. 그 현장이 바로 귀주(평안북도 구성시)다. 귀주에서 고려와 거란군은 명운을 걸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한 판 승부였다. 소배압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자랑하고 있었으니 비록 철수하는 신세지만 전면전을 펼쳤다. 

양국의 군대는 귀주성 동쪽 교외에서 두 곳의 강을 두고 대치했다. 몇 번의 공방전이 있었으나 승부는 판가름 나지 않았다. 그때 개경을 방어하던 김종현의 군대가 거란군의 후방에 나타났다. 거란군은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앞에는 강감찬 군대, 뒤에는 김종현 군대가 협공을 하니 독 안에 든 쥐 같은 형국이었다. 더욱이 날씨도 우군이 되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이제 거란군을 향해 세차게 불어 가는 게 아닌가. “적을 섬멸해야 한다. 그래야 지루한 전쟁을 여기서 끝낼 수 있다.” 강감찬과 군사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 거란군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하기에 급급했다. 살아서 압록강을 건넌 생존자는 수천 명에 불과했다. 

고려 현종은 귀주에서 대승을 거둔 강감찬과 그의 군대를 영파역(황해북도 금천군)까지 나가 맞이하여 환영하며 크게 기뻐했다.

고려군의 승리는 국제무대에서 고려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당시 아시아 대륙은 중국의 송나라와 북방의 거란 그리고 한반도에 고려가 있었다.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이유도 송나라와 패권을 다투고 있는데 고려가 송과 가까우니 걸림돌이 되었다. 고려를 정복해야 안전하게 송나라와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고려에 발목이 잡혔다. 고려의 승리로 전쟁이 끝난 후 100년 동안 고려는 외교를 주도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고려거란전쟁은 고려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귀주대첩의 통쾌한 승리와 그 후 지속된 100년의 평화, 팍스 코리아(Pax Korea)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 속의 강감찬 장군께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양병무 기자

감사나눔연구원 양병무 원장.
감사나눔연구원 양병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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