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

짐은 무겁다. 만약 짐이 가벼운 것이라면 우리는 짐을 짐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의 짐, 대학에 들어가면 취직의 짐, 취직을 하고 나면, 또 다시 결혼에 육아와 교육의 짐이 뒤 따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비록 아무리 당연히 져야 할 짐이라 해도 요리조리 피해가며 우리,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책임회피이며 도리는 아니다. 주어진 책임을 피하고, 떠넘기고 그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은 신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은 신용이 없다보니 인간관계가 물 흘러가듯 흘러갈 리가 없다. 나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서 빙빙 소용돌이나 치는 그런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은 뻔하다.

어차피 우리가 져야 할 짐이라면, 짐을 가볍게 지는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가 짐을 짐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짐은 그 무게를 더하기 마련이다. 우리, 짐을 당연히 입어야 할 옷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면 얼마든지 그 무게를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멋을 부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옷은 우리의 몸을 가려주고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한 옷조차 무겁다고 훌러덩 벗어버리고 거리를 활보하기라도 했다가는 뭇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경범죄로 당장 경찰서로 끌려가 수모를 당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보통 짐이라고 생각하는 짐에는 보이는 짐이 있는가하면 보이지 않는 짐도 있다. 어찌 보면 보이는 짐보다 보이지 않는 짐이 훨씬 더 무거울 수도 있다. 져야할 짐을 영원히 벗어버리겠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방송을 통해 종종 보고 듣게 된다. 물론 그런 사람의 입장에 서 보지 않아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최상의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멋지고 화려한 옷을 입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옷이 인격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우리, 짐에 매여 살 필요가 없듯이 옷에 매여 살 필요도 없다. 단출하고 최소한이면 된다. 그러면 옷을 선택해 입는데 그만큼의 갈등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자식은 짐이면서 옷일 뿐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끌어들여 키운다하여 그 자식이 잘 된다는 법은 없다. 

곡식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이는 그만큼 관심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자식에게 더 많은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 된 도리일 수는 없다. 운동경기 중에 계주가 있다. 부모는 자식보다 바로 앞서 뛰는 주자일 뿐이다. 자식은 부모가 건네주는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면 된다. 그건 자식의 몫일뿐이다. 게 중에는 손자 몫까지 뛰어주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정말이지 아니지 않을까. 

장차 자식이나 손자가 지고가야 할 짐을 굳이 나서서 빼앗아 지고 갈 필요는 없다. 이것은 자식이나 손자가 입어야 할 옷을 빼앗아 입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한 생각을 버리고 살면 우리의 짐은 훨씬 가벼워지고 말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갈 만큼. 


노희석 (시인/서울남부구치소 교정위원)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