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누구일까? 경북 안동의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라고 대답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서울대 안철수 교수와 함께 ‘청춘 콘서트’를 열어 젊은이들의 아픔과 고민에 동참하며 청춘의 멘토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주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의 명성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읽지 못했었다. 박 원장은 의사보다는 부자경제학과 주식투자 전문가라는 인식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1 통찰편’,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2 분석편’이 일반인들에게는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자기혁명’을 읽고 젊은이들을 향한 그의 관심과 사랑에 놀랐다. 그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의 첫 번째 책인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권과 2권을 집어 들었다.

특히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의사, 주식전문가, 작가, 방송인, 멘토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는 영남대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대학생 시절에 돌아가셨다. 가정을 꾸려가던 어머니는 남에게 속아 큰 빚을 떠 앉으면서 집안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의대를 졸업했다.

10년 전에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어렵사리 병원을 개원했으나 첫날 환자가 28명밖에 오지 않았다. 적자를 면치 않으려면 80명이 와야 했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이 사업이 잘못되면 의사 생활도 어렵게 되고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그는 추석과 설날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진료’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는 방문 진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자 하루에 200명이 올 정도로 숨통이 트였다. 개업 6개월 후에는 하루 방문환자 400명을 기록해 당시 의사 개인 진료횟수 전국 3위를 기록했고 빚도 다 갚았다. 그는 적자병원을 흑자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쓸 때 그는 365일 병원에서 지냈는데 밤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알리기 위해 집필한 것이었다. 시골의사가 병원이라는 풍경 속에서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건져 올린 에피소드가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비신부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사연, 일제 때 사할린에 징용군으로 끌려간 남편과 50년 만에 재회했는데 그 남편이 다시금 사고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나환자 아버지를 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들의 효도하는 마음, 40대 중반의 여성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필담을 요청하여 ‘시신기증’을 요청한 이야기 등”이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웃들의 삶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서 따뜻하게 그려지고 있다. 시골의사가 ‘사랑과 진정성’을 가지고 환자에게 다가가는 까닭에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도 감사와 웃음이 있고 희망을 본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감동하면서 재능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재능선생님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집으로 방문하여 ‘사랑과 진정성’을 실천하는 드림코치가 아닌가. ‘재능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행’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남총국 영광지소 김도성 육성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에 대해 아세요?”라고 물으니 조금 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아름다운 동행을 가끔 하지만 재능선생님은 매일 동행하고 있으니 선생님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을 하는 지 알 수 있으리라.

“토요일에 100과목을 관리하는데 어떻게 하세요?” 김도성 선생님이 하루 일정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광주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몰고 영광군에 아침 10시쯤 도착해서 4세 유아에게 5과목을 관리해요. 사무실에서 고1학생 2명, 중3학생에게 5과목씩 관리해요. 중2 한 명은 집에 가서 하죠. 오후 2시쯤 법성포로 넘어가서 두 회원을 가르쳐요. 3시30분쯤 전북 고창군으로 넘어가요. 중1, 초5, 초3 아이들 셋이서 17과목을 관리하고 있어요. 이렇게 영광군, 법성포, 고창군을 순회하다 보면 어느덧 밤이 되고 10시쯤이면 끝이 나요. 저는 기본이 5과목이라서 힘이 들지는 않아요.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니까 행복해요.”

그는 2003년도에 재능선생님이 되었다가 중간에 쉬고 9개월 정도 과외선생을 했다. “과외를 하니까 돈도 많이 벌고 일하기도 쉬웠어요. 9시부터 12시까지 가르치고 오후에는 등산을 갔어요. 그렇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어요. ‘이런 게 과연 교육일까?’ 회의가 들더군요. 그래서 2008년 9월에 다시 재능선생님이 되었죠.” 외도를 한 후 돌아오니 재능의 품이 더욱 포근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재능시스템 만한 것이 없어요. 교육계에 있으려면 밑바탕부터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능시스템 정말 좋아요. B사 교재로 공부하던 학부모들이 재능교재를 보는 순간 감동을 하죠.”

영광군, 법성포, 고창군을 오가면서 시골의사가 왕진하듯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김도성 육성선생님은 따뜻한 교육관을 갖고 있기에 항상 행복한 선생님이다. “재능시스템의 전도사, 긍정과 열정의 화신, 매력만점, 재치만점, 행복 바이러스”, 주위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찬사다.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재능교사 김도성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행"은 붉게 타오르는 단풍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재능교육 대표이사·본지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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