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세무법인 박점식 회장

연말에 들려오는 나눔의 소식은 삭막한 세태에 온기를 더해준다. 며칠 전엔 구세군 자산냄비에 1억짜리 수표를 넣은 어느 신사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밖에도 갖가지 사연이 담긴 기부손길이 이어져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56)은 최근 1000만 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지난 9월 어머니 장례식 때 받은 부의금이었다. 푸르메재단 외에 사회복지재단, 의료재단 등 4곳에 1000만 원씩 기부했다. 박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1000감사쓰기를 하고있다. 매일 감사한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다. 첫 장에는 ‘어머니 아들이어서 감사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 회장은 700개의 감사 말을 책으로 만들어 어머니 무덤에 함께 묻었다.(본보 0000일자 보도)
그는 유복자다. 행여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 들을까, 어머니는 수시로 매를 들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매를 딱 놓으시는 거예요. 아무리 엇나가도 잔소리조차 하지 않으셨죠. 어머니의 무한한 신뢰가 저를 강하게 했습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꿈을 꾸기도 힘들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가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샛길로 빠졌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막걸리에 취해 몸을 못 가눈 적도 많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공부에 굶주렸어요. 누가 대학 갈 방법을 조언해 주고 길이 있다고 알려 줬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했을 텐데….”
주저앉은 그를 뭍의 학교로 보낸 사람 역시 어머니였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 올라와  장갑공장에서 일했고, 백화점에서 포장과 배달을 했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1980년 세무사시험에 합격했다. 6년간 백화점 계단에서 회계학 책을 펴 놓고 주경야독한 결과였다.
20년 전 모교인 흑산초등학교 운동장 문을 고치는 데 100만 원을 난생처음 기부했다고 한다. 기부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근위축병을 앓는 아들 동훈 씨(26)를 키우며 다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근위축병은 근육이 점점 무기력해지는 병으로 아직 치료 방법이 없다. 그의 감사노트에는 ‘동훈이가 내 아들이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씌어 있다.
“다행히 동훈이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받을 수 있었죠. 아예 치료받을 기회가 없는 장애어린이를 위해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꼭 세워져야 합니다.”

연말에 들려오는 나눔의 소식은 삭막한 세태에 온기를 더해준다. 며칠 전엔 구세군 자산냄비에 1억짜리 수표를 넣은 어느 신사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밖에도 갖가지 사연이 담긴 기부손길이 이어져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56)은 최근 1000만 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지난 9월 어머니 장례식 때 받은 부의금이었다. 푸르메재단 외에 사회복지재단, 의료재단 등 4곳에 1000만 원씩 기부했다. 박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1000감사쓰기를 하고있다. 매일 감사한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다. 첫 장에는 ‘어머니 아들이어서 감사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 회장은 700개의 감사 말을 책으로 만들어 어머니 무덤에 함께 묻었다.(본보 0000일자 보도)
그는 유복자다. 행여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 들을까, 어머니는 수시로 매를 들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매를 딱 놓으시는 거예요. 아무리 엇나가도 잔소리조차 하지 않으셨죠. 어머니의 무한한 신뢰가 저를 강하게 했습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꿈을 꾸기도 힘들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가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샛길로 빠졌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막걸리에 취해 몸을 못 가눈 적도 많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공부에 굶주렸어요. 누가 대학 갈 방법을 조언해 주고 길이 있다고 알려 줬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했을 텐데….”
주저앉은 그를 뭍의 학교로 보낸 사람 역시 어머니였다.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 올라와  장갑공장에서 일했고, 백화점에서 포장과 배달을 했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1980년 세무사시험에 합격했다. 6년간 백화점 계단에서 회계학 책을 펴 놓고 주경야독한 결과였다.
20년 전 모교인 흑산초등학교 운동장 문을 고치는 데 100만 원을 난생처음 기부했다고 한다. 기부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근위축병을 앓는 아들 동훈 씨(26)를 키우며 다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근위축병은 근육이 점점 무기력해지는 병으로 아직 치료 방법이 없다. 그의 감사노트에는 ‘동훈이가 내 아들이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씌어 있다.
“다행히 동훈이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받을 수 있었죠. 아예 치료받을 기회가 없는 장애어린이를 위해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꼭 세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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