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의 씨를 뿌리자 ⑭

비록 말의 내용이 동일할지라도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사랑한다”는 말을 살펴보자.
“사랑해!”
젊은 남녀가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만나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이성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의 표현이 된다. 달콤한 초콜릿 같은 말이다.
“형제님, 사랑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악수를 나누며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말을 이성적인 사랑으로 착각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친구야, 내가 널 무지 사랑하는 거 알지?”
여자 친구들끼리 이렇게 문자를 날리면, 친구 사이의 건전한 우정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을 난데없이 ‘동성연애’로 해석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말을 할 때 시간과 장소는 물론이고 표현의 방식까지 잘 고려해서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한다.

‘뭉클한 말’과 ‘속상한 말’

어떤 내용을 말로 전달할 때 표현 방식을 잘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역을 하시던 선교사 한 분이 설교를 하면서 들었던 예화 하나를 소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자가 남자 앞에서 등을 보이는 것은 큰 결례라고 한다. 어느 여자 성도가 차를 타면서 남자에게 “형제님, 용서하세요. 제가 형제님에게 등을 보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때 뒤에서 차를 타려던 남자가 이렇게 받아쳤다.
“괜찮습니다. 장미에 앞뒤가 있나요?”
여자를 꽃 중의 꽃인 장미에 비유한, 정말 재치 있는 표현이었다. 여자 성도는 화사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어떤 남성이 이렇게 쏘아붙였다면 어땠을까?
“괜찮습니다. 드럼통에 앞뒤가 있나요?”
문장 구조와 어법은 비슷하지만 ‘장미’와 ‘드럼통’이라는 단어 때문에 상대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을 수도, 불쾌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 선교사가 경상도 어느 교회에 가서 “이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험상궂게 생긴 장로님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안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굉장히 짜증스러운 경우가 있다. 그런데 똑 같은 내용을 다른 어떤 사람이 표현할 때는 전혀 거북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모든 것이 다 말을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는 것이 예쁘고 복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다른 어떤 사람은 말하는 것이 영 마뜩찮고 밉살스럽다. 같은 말이어도 표현 방식 즉 어투에 따라 상대방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 수도, 확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표현에 따라 반응도 차이

어느 시각장애자가 지하철 입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에 팻말 하나를 걸고 있었다. 그 팻말에는 이런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그 시각장애자 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사람들은 무정하게 그냥 스쳐 지나갈 뿐, 동전을 넣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역시 시각장애자는 구걸을 하기 위해 평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도 허탕을 칠 것이 뻔했고, 허기가 진 그는 쪼그려 앉아서 빵조각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던 청년이 구걸하는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팻말의 글씨를 다시 써서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는 봄이 와도 꽃을 볼 수 없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그냥 지나치던 행인들이 몰려오더니 깡통에 아낌없이 동전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글자 몇 자를 바꾸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 팻말의 새 글씨에 마음이 동요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몇 마디 말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같은 말이지만, 그 표현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다를 수 있다. 당신이 하는 말이 지혜로운 말인지, 어리석은 말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라.

김병태 목사 ․ <절대감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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