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로 배우는 감사

<1> 미애의 아빠는 부산에서 제법 큰 규모의 고물상을 운영했다. 말이 고물상이지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애는 학교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 딸로 통했다. 당찬 성격에 예쁘장한 외모까지 갖춰 남부러울 것 없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 미애의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계주 노릇을 하며 일수와 이자놀이까지 하던 엄마가 사기꾼의 꾐에 넘어가 남의 곗돈과 일수 돈, 제법 큰 2층 양옥집까지 모두 날리고 말았다. 그 일로 미애네 가족은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잘살던 집안을 하루아침에 빚쟁이로 만들어버린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무일푼에 가족 간의 신뢰까지 무참히 깨진 상태로, 아빠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엄마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사춘기 소녀 미애 역시 서울에서의 느닷없는 쪽방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애는 자신도 모르게 이중적인 아이로 변해갔다. 학교에서는 부잣집 딸인 것처럼 행세했다. 하지만 그건 허세일 뿐 현실이 아니었기에 미애는 늘 공허함에 시달렸다.

<2> 그러다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호기심처럼,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친구가 갖고 있는 작은 손거울을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것을 손에 넣자 왠지자신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미애의 도벽이 시작되었다. 미애가 그 아이, 희주를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희주는 무리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미애가 보기엔 딱히 호기심을 일으킬 만한 타입이 아니라서 각별히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옆에 있으며 왠지 편안한 그런 아이였다. 희주네는 시내 뒷골목에서 구멍가게를 했다. 어느 날 그 근처를 지나던 미애가 희주네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희주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다. 희주는 미애를 보자 반가워하며 냉장고에서 초코우유를 꺼내 주었다. 희주가 드나드는 손님을 상대하느라 분주한 동안 미애는 좁은 가게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금고에 눈이 갔다.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느라 연신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금고 안엔 제법 많은 지폐가 쌓여 있었다. 그날 미애의 행동은 우연이나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3> 뻔히 들통 날 짓은 하지 말아야 해,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희주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금고에 손을 대고 말았다.잠시 후 돌아온 희주는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금고를 열어보고 순간 굳은 표정이 되었다. 미애는 희주가 눈치 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겁고 갑갑한 침묵을 뒤로 하고 미애는 가게를 나왔다.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미애는 희주가 학교에
소문을 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희주는 학교에서도 그 일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미애의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다. 몇 날 며칠 속을 끓이던 미애는 결국 쓰고 남은 얼마의 돈을 종이에 싸서희주에게 건네며, 웅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이젠 됐어. 다행이야. 난 네가 우정과 그 돈을 바꿔버리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어.” 그렇게 둘만이 아는 해프닝이 지나간 뒤에도 희주는 전과 다름없이 미애를 대했다. 미애는 그런 희주가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미애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당연히 돈 쓸 일이 많아졌고 학교에서의 도벽도 더욱대담해졌다. 그러다 맞이한 여름방학. 남자친구와 놀러 갈 계획은 세웠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니 돈을 구할 기회도 없었다. 미애는 또 한 번 희주를 이용할 작정으로 희주가 공부하고 있는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임신을 했다고, 아이를 지워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거짓말이었다. 다음날, 희주가 만 원짜리 두 장을 미애에게 건넸다. 그 당시 고등학생에겐 꽤 큰돈이었다. 미애는 희주가 어떻게 그 돈을 구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쨌든 미애는 그 돈으로 남자친구와 놀라가서 신나게 써버렸다.

<4>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결국 미애의 손버릇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 일로 친하게 지내던 모든 아이들이 미애에게 등을 돌렸지만, 희주만은 달랐다. 그 아이만이 전과 다름없이 미애를 대했다. 미애는 희주의 그런 태도가 싫어 오히려 희주를 피하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자신에게 더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희주가 또다시 미애앞에 나타나자 속에 있던 화를 퍼붓고야 말았다.
“너 내가 도둑년인 거 몰라?”
“알아.”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네가 이러는 거 나 정말 불편해. 차라리 다른 아이들처럼 솔직하게 날 욕해. 도대체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내가 불쌍하니?”
희주가 한참 동안 미애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널 믿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마음은 누구보다 좋은 아이라는 거. 네가 도둑질을 했다고 해도 그게 너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 어쨌든 넌 내 친구야.”
미애는 그 순간 속으로 희주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자기를 믿어주고 여전히 친구로 생각해주는 그 아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우고 싶은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다는 게 불편해서였을까. 미애는 희주가 좋았지만 가까이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희주를 피해 다니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친구. 미애는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친구 희주에게 평생 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 뒤로는 남의 물건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친구의 믿음 덕분에 미애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착해서 바보같았던 그 아이. 미련한 그 아이의 믿음이 미애에게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 감사 동화를 읽고 느낀 점을 함께 나눠 보세요.
1. 미애의 도벽은 왜 생긴 걸까요?
2. 희주는 왜 도벽이 있는 미애를 너그럽게 받아들인 걸까요?
3. 주변에도 희주 같은 친구가 있는지 찾아보고, 그 사람에게 감사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성숙 씨는 광고디자인 회사에서 일한 뒤, 엉뚱한 상상을 즐기며 책에 그 작업물을 담아내는 그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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