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민생활로 대한민국 국민 정체성 혼란 … 군부대에서 회복

정체성 극복 위한 지각입대 “저는 박기만 상병입니다”
오랜 이민생활로 대한민국 국민 정체성 혼란 … 군부대에서 회복

박기만 상병 (7사단 3연대)

단결!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 7사단 3연대 상병 박기만입니다.

 저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박기만이라는 한글 이름이고 하나는 호주에서 살면서 제가 만들었던 이름인 ‘Chris Park’ 이라는 영어 이름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호주 시드니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박기만’이 아닌 ‘Chris Park’으로 15년을 살아왔습니다.

호주인들과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운전면허, 사업자 등록증, 심지어는 SNS 아이디까지 ‘박기만’이 아닌 ‘Chris Park’으로 살아왔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때까지 저는 제가 호주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영주권을 신청 할 때까지는 한국인이 아닌 호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영주권을 신청한 후로 제 가슴에는 작은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한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호주인도 아닌 제 모습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의문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의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나는 한국사람 인지 호주사람 인지….

모두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국인이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저의 다짐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 한국인 ‘박기만’이 되고 싶었고 보통사람과 같았더라면 벌써 예비군까지 끝이 났을 나이인 32살에 한국 남성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전례 없는 고도의 경제성장에 세계인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친숙해졌는지 모르지만 제게는 오히려 더 멀어진 듯 했습니다. 15년 전과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제가 놀던 장소는 이미 없어져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저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친구하나 없었고요.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무기력했습니다. 점차 군복무를 해야겠다는 다짐마저 약해졌고 다시 호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수백, 아니 수천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훈련병 박기만으로 상승칠성부대에 전입한 이후로는 모든 염려가 사라졌습니다. 사단장님, 연대장님, 그리고 대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간부님들께서는 저를 잘 지도해주셨으며 선임들은 저를 이끌어주고 후임들은 저를 밀어주었습니다. 모두 함께 씻고 함께 잠들고 함께 운동했으며 어설펐던 제 한국말까지 바로잡아줬습니다.

공군지상합동훈련 때 무거웠던 제 포다리를 대신 짊어지는 선임의 모습을 보고 진한 전우애도 느꼈습니다. 몸은 비록 편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어릴 때 살던 집에 다시 온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소외되는 것이 아닌 환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2016년 6월 25일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 했던 통일훈련은 제게는 훈련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초여름이었지만 이곳의 새벽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쌀쌀했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경계근무를 하는 도중 옆 전우가 말했습니다.

“박기만 상병님, 오늘이 6월 25일입니다. 대한민국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이 한마디에 저는 갑자기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며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민족 최대의 아픔인 6월 25일, 선배 전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이 땅을 이어받아 내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 국토를 지키는 제 모습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Chris Park’이 아닌 완전한 한국인 ‘박기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15년 동안 제 가슴속에 묻혀있던 응어리가 풀어진 것처럼 개운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군 입대를 결정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저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다시 한국인이 될 기회를 준 군인이라는 신분이 저는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항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며 군 복무기간 후에도 나라의 부름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장 먼저 달려오겠습니다.

사단장님께서 심어주신 절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상승칠성의 정신무기를 항상 가슴에 품고 있겠음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박기만’이라는 저의 이름을 다시 찾아준 대한민국 육군에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박기만 상병 (7사단 3연대)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