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은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제자다. 황상은 1802년 10월 열다섯 살 나던 해에 정약용을 처음 만났다. 당시 정약용은 천주학쟁이로 몰려 강진으로 귀양 와 있었다.
황상은 서울에서 온 훌륭한 선생님이 아전의 아이들 몇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 고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그렇게 내쳐 몇일을 찾아가 쭈뼛쭈뼛 엉거주춤 글을 배웠다. 7일째 되던 날 다산은 황상에게 글 한 편을 써주었는데, 이에 대한 기록 은 황상의 문집에만 실려 있다. 그 이야 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선생은 잔뜩 주눅 든 소년에게 기를 북 돋워주었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항상 문제는 내 가 민첩하다고 생각하고, 총명하다고 생 각하는 데서 생긴단다. 한 번만 보면 척 척 외우는 아이들은 그 뜻을 깊이 음미할 줄 모르니 금세 잊고 말지. 너처럼 둔한 아이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대단 하겠니? 둔한 끝으로 구멍을 뚫기는 힘 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 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릴 게다. 꼭 막혔다 가 뻥 뚫리면 거칠 것이 없겠지. 그러자 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첫째도 부지런 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요, 셋째도 부 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 함’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말도록 해라.”

황상은 스승의 이 가르침을 평생에 두 고 잊지 않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후에 다산의 형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친필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황상은 나이가 이제 스물이 못 되었는 데, 월출산 아래서 이 같은 문장이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네. 어진 사람의 이로움 이 어찌 이다지 넓단 말인가?”
소년은 그로부터 61년의 세월이 지나 일흔여섯이 되도록 스승의 가르침을 마 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자나 깨나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노라고 눈 물겹게 고백하였다.

이 이야기에 제격인 것이 ‘우보만리’( 牛步萬里)라는 고사성어다. 이는 ‘소걸 음으로 만 리를 간다’라는 뜻으로 풀이 되며, 시간은 더디게 걸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것이 믿음직스럽다는 의 미를 지닌다.
희망을 품은 사람에겐 우보만리의 뚝 심이 있다. 희망을 붙잡으면 어떤 경우 라도 단념하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여 최 후의 승자가 되게 해 준다. 천리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갈 수 없으며, 둔한 말 이라도 열흘이면 준마가 하루 가는 길 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가 기 때문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대 학시절부터 자신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 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동기들 중에 수학적 재능이 무척 뛰어난 친구들 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 람들과 달랐던 점은 거기서 좌절하거나 안주한 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 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미리 남 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 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길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우리의 황소걸음에 사랑의 채찍을 가한다.
“오, 인간이여. 그대가 약하든 강하 든 쉬지 마라.
혼자만의 고투를 멈추지 마라. 계속 하라, 쉬지 말고.
세상은 어두워질 것이고 그대는 불을 밝혀야 하리라.
그대는 어둠을 몰아내야 하리라.
오, 인간이여. 생이 그대를 저버려도 멈추지 마라.”

인생은 한 걸음씩 개척해 가는 것이다. 그 누구의 인생도 결코 미리 정해져 있 지 않다. 또한 인생은 역경과 영광이 교차 한다. 오늘에서 내일을 향해 서두르지 말 고 꾸준하게 전진하자. 매사 감사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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