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기 싫어 꺼린 결혼, 막상 낳아 보니…

“생명을 통한 배움에 감사합니다”
아이 낳기 싫어 꺼린 결혼, 막상 낳아 보니…

나는 왜 결혼하기 싫었을까?

돌아보면 삶에 대한 회의가 컸다. 매일 반복되는 삶도 싫고 뒤죽박죽된 세상도 싫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우상이 되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만연한 세상을 보며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었다. 무능력한 시선으로 세상의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세상에 생명 낳는 일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가 경험하게 될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 속에서 나 때문에 누군가가 힘들게 살아가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늘 대비해야만 하는 내 성향이 다분히 작용한 생명관이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나는 누가 들어도 놀랄 만한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후 아기까지 가졌다.

아이는 절대 안 낳겠다더니 결혼 후에는 ‘주시면 낳고 안 주시면 못 낳고’라고 생각하다가 아이를 갖게 되니 남편 말마따나 자녀가 많은 것이 축복이라는 것에 동감하게 되었다.

아이를 갖게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이 돌아가고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희망은 바로 사람이었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절망하지만 그 가운데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다 부패하고 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주고 내가 웃을 때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자녀들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복지가 잘 되어서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에 태어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세상을 좀 더 밝히기 위해 할 일을 찾아가기를 기도하려고 한다.

한 번 태어난 인생, ‘혼자 잘 먹고 잘살다가 죽다’로 남겨지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는 가치 있는 일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기쁨을 누리다가 가기를 기도한다.

잘 몰랐을 때는 나를 낳아 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나를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건지, 부모님도 행복하지 않으셨으면서 무책임하게 나를 낳으신 이유는 무엇인지.’

물론 직접 그렇게 묻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금수저를 물려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사랑의 수저를 물려주셨다. 부모님은 네 딸 키우시느라 앉아 있을 새가 없으셨다.

박봉에 늘 부업을 손에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 정년퇴직 후 병들어 고생하다 가신 아버지. 그분들 덕분에 이 세상에 존재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분들이 물려준 사랑의 수저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본체를 향해 날마다 걸어간다.

사랑의 깊이를 다 깨닫기에는 한계가 있는 인간이지만 생명이 생명과 관계하면서 조금씩 깨닫는 사랑의 맛이 삶에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던 사랑, 이제 그 사랑을 줄 차례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서툰 사랑을 시작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렇게 나를 깨뜨리고 무너뜨리고 나니 생명을 받아들이기 훨씬 쉬운 상태가 되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하는 식의 딱딱했던 틀이 깨지고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생명,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짝이 없었다. 임신 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해 경외감마저 들었다.

생명으로 존재하기까지의 수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위해 나눈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임신 후 강원도 산골에서 맞이하는 한 주일 아침에 군 교회에 들어오는 군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존귀해 보였다. 군복을 입고 있어 다들 비슷해 보였지만 그들을 낳고 기르기 위해 애썼을 부모님들의 사랑이 느껴져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직 생명을 기른다는 얘기조차 하기 어려운 초보 엄마였지만 공감이 되었다.

‘이렇게 애쓰셨구나. 자기 자신보다 더 아끼고 마음 쓰셨구나.’

아이를 낳기 싫어서 결혼을 꺼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고 나에게 생명 주신 분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아이들도 사랑하시는 분이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니 두려움이 사라진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질 필요도,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생명을 통한 배움에 감사드리며 그래도 부모로서 좀 더 나은 세상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써봐야겠다.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매일 작은 초 하나 드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 이 글을 쓴 박연숙 님은 도서출판 동연의 편집부 일을 돕고 있습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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