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감사 명작 감사(2)

상황감사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어린 왕자’에게서 배우는 감사
3단계 감사 명작 감사(2)

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그래서 나는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도 없이 홀로 지내왔는데, 육 년 전 어느 날 사하라 사막에서 문득 비행기 고장을 만나게 되었다.

비행기 엔진의 어딘가가 파손된 것이다. 정비사도 승객도 없이 혼자였으므로 나는 그 어려운 수리를 손수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마실 물이 일주일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첫날 밤,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에서 잠이 들었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뗏목을 타고 표류하는 난파자보다도 훨씬 더 고립된 신세였다.

그러니 해가 뜰 무렵, 어떤 기이한 목소리에 잠이 깬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말했다.

“저기……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응?”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후닥닥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이상하게 생긴 조그만 아이가 나를 심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 있는 그림은 훗날 내가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중에서 가장 잘된 것이다. 그러나 물론 나의 그림은 모델보다는 훨씬 덜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여섯 살 적에 이미 어른들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어버린 후 나는 뱃속이 보이지 않거나 보이거나 하는 보아구렁이 외에는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본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 아이를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보았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사람 사는 지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이 아이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해서, 배고파서, 목말라서, 무서워서 죽겠다는 표정도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이윽고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그러자 그는 아주 중대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부탁이야,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너무나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게 되면 감히 거역할 생각을 못 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에 너무나도 엉뚱하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결국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러나 곧 내가 배운 것은 지리, 역사, 산수, 문법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기분이 나빠진 목소리로) 난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괜찮아.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양은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내가 그릴 줄 아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의 하나를 그려주었다.

뱃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구렁이의 그림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보아구렁이 뱃속의 코끼리는 싫어. 보아구렁이는 너무 위험해. 그리고 코끼리는 너무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은 곳이거든. 난 양을 갖고 싶어.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그래서 나는 양을 그렸다.
그는 양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 돼! 이 양은 벌써 병이 들어버렸는걸. 다른 걸로 하나 그려줘.”
나는 다시 그렸다.

내 친구는 너그럽고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 참…… 그건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달렸으니까……”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갖고 싶어.”
엔진을 분해하는 일이 급하기에 나는 아무렇게나 다음과 같은 그림을 끼적거려놓고는 그에게 한마디를 툭 던져보았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속에 있어.”
그러자 내 어린 심판관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고 나는 몹시 놀랐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야! 이 양한테 풀을 많이 줘야 할까?”
“왜 그런 걸 묻지?”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거든.”
“풀은 넉넉할 거야. 내가 그려준 건 아주 작은 양이니까.”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다지 작지도 않은데 뭐…… 이런! 잠이 들었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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