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행복한 직장과 가정의 선순환

내가 감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조봉래 당시 포항제철소장을 통해서였다.

조 소장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사경영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곧바로 인사팀 직원을 포항으로 보내 벤치마킹 가능성을 타진했다.

우리 직원들이 감사 문구가 적힌 종이배 1000개를 받아 왔다. “포항제철소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철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포스코 직원들이 적은 글을 꺼내 읽으면서 속으로 ‘그래 바로 이것이다!’라고 외쳤다.

조선업은 업종의 특성상 쇠를 다루기 때문에 자칫 직원들의 정서가 메마를 수 있다. 나는 직원들이 행복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고민 중이었는데, 감사나눔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2013년 4월 23일 감사나눔 선포식을 갖고, 직장과 반장이 감사교육을 받도록 했다. “입사 이후 받은 교육 중 제일 보람 있었다.” 1박2일 감사교육을 끝내고 현장에 돌아온 직원들이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실제로 이들은 솔선해서 감사나눔 실천에 나섰고, 조선소의 분위기가 긍정적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감사나눔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났다. 가장 놀랐던 것은 직원들 가정의 변화였다. 나는 그것을 직원 부인들이 직접 보내온 감사편지를 통해서 실감했다.

“남편을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회사의 분위기에 감사합니다. 감사나눔으로 우리 가족의 자존감과 결속력을 높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변화한 직원들은 직장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다. 불평과 고성이 오가던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감사를 나누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감사 족자를 만들어 전달하면서 선주와의 관계에도 큰 도움이 됐다.

‘행복한 가정과 직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직장 생활 39년차인 나의 숙원 사업이었다. 나는 1977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35년 만인 2012년 사장을 맡았다.

그런데 직장 생활의 절반은 자녀의 교육 때문에 상경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주말 부부가 아니라 월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자녀의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장녀의 결혼식 전날, 아빠로서 딸에게 해준 것이 없음을 깨닫고 너무나 미안해 대성통곡했다. 그 뒤로는 퇴근하면 꼭 하루 1시간씩 가족과 전화 통화를 했다.

딸과 함께 고구마를 가지고 감사 실험을 했고, 아내에게 100감사를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감사나눔은 나의 성격도 변화시켰다. 안경을 다초점 렌즈로 바꿨을 때의 일이다. 안경점 직원이 계단을 내려갈 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는데, 깜박 잊고 평소처럼 계단을 내려가다 헛걸음을 하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을 크게 다쳤고, 피까지 흘렀다. 예전 같았으면 부주의로 실수한 나 자신은 물론이고 ‘왜 하필 이런 곳에 계단이 있냐’고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상황에서 ‘얼굴을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많이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를 실천한 것이다.

나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범사에 감사, 평생 감사’이다. 나와 삼성중공업은 감사로 어떤 상황도 이겨낼 것이다.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박대영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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