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감사

절기 감사

처서(處暑) 바람의 경계에 서다

더위(暑)가 그치는(處) 절기, 처서입니다. 알곡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 한껏 차오르고 풀은 자라기를 멈춥니다. 벌초를 하고 백중날 호미를 씻어 갈무리를 해둡니다.

김장을 위한 가을무를 심고 비가 오지 않길 바라며 귀뚜라미 소리 반주삼아 가만히 되어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자연은 어쩌면 이렇게 자랄 때와 그칠 때를 절로 알아 가리는 것일까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터인데 어찌 그 이치를 넘어서려 할까요. 황순옥 시인은 ‘처서’를 두고 ‘바람의 경계’라 했습니다. 시인은 태양과 바람 사이 화상 입은 꽃잎을 지켜보았습니다.

열기에 화상 입은 꽃잎은 바람을 기다립니다. 비로소 바람이 갈리는 경계에 왔네요.

숨이 턱 막히는 더운 바람이 숨통이 탁 트이는 선선한 바람으로 탈바꿈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에 호미를 씻고 사람의 일이 하늘의 일로 완성됨을 지켜봅니다.

이제 곧 가을이 완연하겠죠. 시인은 ‘가을로 가면 나는 또 다른 기도를 해야겠지’라고 합니다.

계절의 바뀜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체감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에 승복합니다. 내 열기로 인해 화상 입은 꽃잎이 그제야 보입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구하는 기도보다 받은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기도가 더 아름답고, 화려한 열기보다 위로의 바람이 더 고맙습니다.

다가오는 바람의 계절, 가을이라는 성숙 안에서 절기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합니다.

당신의 가을이 쓸쓸하지 않기를, 우리의 계절이 여전히 빛나기를.

[24절기 중 14번째인 처서는 양력으로 8월 23일입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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