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건강
내 몸은 내가 지킨다균형회복 자연학교 교장 우이당이 말하는 ‘중병에 이르지 않는 12가지 자연법칙’ (16)
  • 우이당 김명식
  • 승인 2017.08.04 19:34
  • 호수 181
  • 댓글 0

균형회복 자연학교 교장 우이당이 말하는 ‘중병에 이르지 않는 12가지 자연법칙’ (16)

내 몸은 내가 지킨다

성공하는 이들은
현재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나눕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3. 사랑하네 사랑하네 사랑하네

생명을 북돋는 유일한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힘이 솟습니다. 사랑 받으면 몸과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사랑은 음의 정기와 양의 정기가 합쳐지는 순간입니다. 분리된 음양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 섬광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마치 하늘에 번개가 일 듯 마음속에 번개가 일고 상상할 수 없는 강력한 전기력이 발생합니다. 1 플러스 1이 3으로 치환되는 세상. 삼을 넘어 십 백 천 만으로 확대되는 세상에 사랑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현재형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강렬한 사랑의 에너지에 휩싸여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력과 능력만으로 홀로 컸노라 말하는 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마음이 그다지 큰 이는 아닙니다. 자신만 모를 뿐. 현재를 뒷받침한 누군가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를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영웅과 위인. 특별히 강렬한 사랑의 에너지에 빠진 결과입니다.

이성을 그리워하는 걸 부끄러워해선 안 됩니다. 오직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자산이요 마지막 힘의 원천을 남의 이목에 맡겨선 안 됩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유교적 교조주의에 빠져 산 나머지 평생 허울과 이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합니다.

오죽하면 밖(외국)에 나가야 비로소 한 꺼풀 외투를 벗은 홀가분해진 느낌이라고 말할까요. 사랑도, 정직성도 놓쳐버린 사회가 우리네 심성의 부끄러운 단면입니다.

이것을 자칫 불륜을 조장하고 탈선을 부추기는 일로 받아들여 핏대를 세우는 바보가 있습니다.

바보를 깨우치긴 어렵습니다. 시간을 내어주긴 더욱 어렵습니다. 그저 인생을 허비하며 바보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자각하는 만큼 살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풍요로운 삶은 풍요로운 사랑이어야 가능합니다. 세상을 돌아보고 행복한 소풍이었다고 미소 지을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럼 건강은 절로 따라옵니다.

 

4. 평생 사랑하며 사는 법

늘 가까이 늘 함께 사랑하는 법이 있습니다. 밥 먹고 얘기 나누고 걷고 자는 일입니다.

가장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밥을 나누는 일입니다. 음양이 짝을 찾아 나선 것도 실은 밥상을 함께 할 친구를 찾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혼자 무슨 맛으로 먹습니까?

천지가 음양공사를 하고 음양이 다시 천지가 빚은 밥공사를 함께 나눔으로 우주공사는 완결됩니다. 그러니 남녀가 처음 만나 밥을 나누며 서로를 겨눠보는 일도 합당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밥을 나누고 나면 차를 나눕니다. 무슨 차면 어떻습니까?

그득히 배에 포만감이 번지면 왠지 긴장이 풀어지고 여유가 생겨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됩니다. 물론 남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얘기를 듣고 나누다 봄 아하 이래서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집니다.

배도 부르고 마땅한 대화 상대를 만났는데 조금은 더 걷고 싶습니다. 누가 더 말을 많이 하는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똑같은 길을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동지라는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길 중 유독 두 사람만이 선택한 길 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동지애를 확산시켜 줍니다. 걷는다는 것은 땅을 주름잡아 뒤로 당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땅의 주름을 잡아당기니 땅 위에서의 삶이 보다 수월하게 빠르게 열리게 됩니다.

이렇게 지혜가 열리다 봄 도저히 떨어져 내일 다시 만날 확률에 승부를 걸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이심전심 약속이라도 한 듯한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밤이 어둡고 무서우니 같이 지내려 하겠지요. 하하하….

 

제11장 내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1. 내 몸은 내가 지킨다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나긴 어렵습니다. 무수히 많은 생명체 중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긴 정말 어렵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 ‘나’인 것은 더욱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지금 현재 여기의 ‘나’로 범위를 좁히면 불가사의(不可思議)입니다.

‘나’는 유사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시공(시간과 공간)을 날으는 아주 작은 우주선의 선장입니다.

내가 눈떠 지켜봄으로 우주라는 대해는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나’의 시간 동안 우주는 영속성을 갖습니다.

살아있다는 건 뭘까요? 정상적으로 우주선을 관리하는 선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소멸하면 우주선 역시 운행을 멈출 것입니다. 나의 의식에서 우주 역시 소멸할 것입니다. 그럼 우주는 영영 종언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유한 존재가 치열하게 우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주는 유한자인 인간으로 인해 무한으로 확대됩니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우주는 무한 그 자체입니다. 유한함으로 이어지는 무한함. 방점으로 이어지는 무한선.

선장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이자 숙명입니다.

최선을 다해 우주선을 관리하고 우주의 영속선에 기여하는 것. 누구일까요? 사람입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삽니다. 초파리는 7일 정도를 삽니다. 개는 10년 소는 15년 정도입니다. 당나귀는 45년 코끼리는 70년 정도를 산다고 합니다. 거북은 200년도 넘게 산다고 합니다.

사람은 몇 년을 살아야 천수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동물의 수명은 비교적 적정한 자연환경에 놓인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스스로를 관리할 수 없어 환경에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이당이 묻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일까요? 그건 절대치일까요, 상대치일까요? 아님 희망치일까요?

사람은 생명체 중 유일하게 환경을 극복한 존재입니다. 자신을 관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관리하지 않으면 환경에 관리당해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환경의 피지배로부터 환경을 지배한 역사로의 이행입니다. 이것과 비례해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걸까요? 궁극적 수명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고대인으로 살아갈지 현대인으로 살아갈지 정하는 건 순전이 자신의 몫이라는 점입니다.

우이당 김명식  webmaster@www.gamsanews.co.kr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이당 김명식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