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단골 메뉴 ‘감사’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다
시상식 단골 메뉴 ‘감사’

성평등, 성폭력 등을 다룬 ‘마녀의 법정’에서 7년차 에이스 검사로 열연해 2017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려원 씨(왼쪽)

감사만 나열되는 수상 소감?

감사는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표현해야만 그 가치가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는 자존감 감사도 있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의 최고 진리인 ‘범사에 감사하라’처럼 일상적인 감사 표현이 흘러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감사나눔 활동가들은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시상식장에 선 수상자들이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조목조목 언급하며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을 우리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왜 여전히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향할까?

‘2017 KBS 연기대상’에서 ‘마녀의 법정’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정려원 씨의 수상 소감을 두고 벌어진 논란을 잠시 보자. 다음은 정려원 씨의 수상 소감 일부이다.

“범죄 피해자 중 유일하게 성범죄 피해자 분들은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강화가 되어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피해자들도 용기 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 외에 정려원 씨는 여느 수상자처럼 소감 말미에 지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를 두고 SBS 김성준 앵커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2년 전 유아인의 느끼하면서도 소름 돋는 수상 소감은 없었네. 정려원한테 기대를 걸었는데 생각보다 아니었다. 왜 수많은 훌륭한 연기자들이 연말 시상식 무대에만 서면 연기를 못할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 대한 팬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김 앵커는 자신의 글을 삭제하고 하루 만에 사과 글을 올렸다.

“저는 정려원 씨의 자연스러우면서 독특한 연기 스타일로 미뤄 수상 소감도 남다를 거라고 기대했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을 보듬는 수상 소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칭찬을 받는 걸 보고 마음속으로 박수도 보냈습니다. 다만 이왕 그렇게 할 거면 군더더기 인사말 빼고 좀 더 완성된 입장을 내놨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연기자라면 감독, 동료배우, 소속사 사장, 스태프, 친지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울먹이는 것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정려원 씨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해냈지만 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감사는 군더더기 말?

김성준 앵커의 발언 초점은 수상 소감 내용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연기에 있었다고 하지만, 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함이 일었다. 기자가 감사를 알고 난 뒤 들어본 배우들의 수상 소감은 전과 상당히 다르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열거하는 감사가 아니라 어쩌면 저렇게 최선을 다해 감사를 표현할까, 거기에 관심이 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김성준 앵커의 발화(發話) 경위를 두 가지 측면에서 추측해 보자.

할리우드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은 2017년 열린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할리우드에는 아웃사이더와 외국인이 넘쳐난다. 이들을 쫓아내면 미식축구와 이종격투기 말고 볼 게 없다. 그건 예술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우리는 모두 패배한다.”

메릴 스트립은 시상식장에서 공개적으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반 이민자 정책을 비판했다.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7년 특검팀의 검사가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에게 내린 구형 이유에서 이를 인용해 화제가 되었다.

언론인 김성준 앵커는 이런 면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시상식장에서 기승전결을 갖춰 소신을 밝히는 배우의 발언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그래서 “다만 이왕 그렇게 할 거면 군더더기 인사말 빼고 좀 더 완성된 입장을 내놨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왜 김성준 앵커는 감사의 말을 ‘군더더기 인사말’이라고 했을까? 정말 고마운 분들한테 실명을 거론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의 무의식에서는 남발되는 것 같은 감사가 식상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기자는 감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상에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감사로 엮여 있다

2017년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배우들. ‘피고인’의 지성. ‘아버지가 이상해’의 김영철, ‘황금빛 내 인생’의 천호진.(왼쪽부터)

2017년 대상 수상자들 가운데 지성, 김영철, 천호진 씨의 수상 소감을 들어보자.

 

“이런 이야기(‘피고인’)로 시청률이 잘 나왔다고 즐거워할 수 없었다. 올해 초 방송된 드라마 잊지 않고 상 주셔서 감사하다. 피고인 팀의 노력과 노고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이 상이 피고인 팀에게 새해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19년 동안 한결 같은 사랑으로 함께 해주신 팬분들께도 감사드린다.”(지성)

 

“한 인물마다 캐릭터를 잘 살려 준 이정선 작가, 그 작품을 현실감 있게 연출해 준 이재상 감독, 촬영감독 이윤정 감독에게 감사하다. (극 중) 아내 김해숙 씨, 아들 민진웅과 이준, 우리 세 딸 이유리, 정소민, 류화영 우리 식구들과 트로피를 나눠 갖겠다.

지금 집에서 보고 있을 제 아내와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KBS를 사랑해주시고, ‘아버지가 이상해’를 시청해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김영철)

 

“아직 저희 드라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감히 이 상을 받게 되는 게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제가 받지 않겠다. 이 상은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드리겠다. 진심으로 이 상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 있다.

‘여보 연애할 때 한 약속을 지키는 데 34년 걸렸네. 너무 늦었다, 미안해. 당신만 허락하면 다음 생에 당신이랑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황금빛 내 인생’ 끝날 때까지 사랑해주시길 바라겠다. 우리 후배들 고맙다.”(천호진)

 

장미희 씨의 “아름다운 밤이에요”나 황정민 씨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놓았을 뿐이다”라는 소감처럼 오래 회자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감사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것이다.

감사를 알기 전 기자도 왜 하나같이 배우들은 굴비 두름처럼 감사만 엮어내는지, 그것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 하지만 감사를 접하고 나서는 달라졌다.

자신이 있기까지 가장 고맙다고 생각한 분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에서 감사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그들과의 관계가 ‘감사’로 엮여 있다는 것을 공언(公言)하는 모습에서 감사의 새로운 미래를 보았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가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 하든, 5감사카드를 써서 주든, 100감사를 써서 주든, 마음에 담지 말고 감사를 밖으로 끄집어내 상대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하라’가 실제로 일상에서 구현될 수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이 있듯이, 감사 대상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일상적 표현이 우리의 관계들을 감사로 일체화시킬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감사 표현은 감사를 일상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고 생각한다.

 

감사 정착에 큰 기여

어떤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온전한 열정과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홀로 뭔가를 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공(功)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작가나 화가와 달리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드라마, 방송, 영화 등에서는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황정민 씨의 발언처럼 배우는 모든 이들의 완벽한 협업이 있어야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타고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네패스의 감사경영 사례에서 보듯이 감사가 협업문화 조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배우나 예능인들이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함께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 말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해야겠다는 관점의 전환, 감사가 기자에게 준 연말의 대상 같은 선물이다.

공개석상에서의 감사 표현, 일상에서의 감사 정착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에 미리 감사한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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