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독서토론

근성 - 같은 운명, 다른 태도조서환 저쌤앤파커스

 

나는 형제자매가 많다. 부모님은 자그마치 열명의 자녀를 낳으셨다. 그중 두 아이가 잘못되고, 우리 팔남매는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컸다. 하지만 칠갑산 자락에서 밭 매던 우리 집 사정에 팔남매를 다 대학에 보낼 도리가 없었던 부모님은 공짜로 다닐 수 있는 데로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형제 중에서도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도 큰 편이어서 ‘얘는 군인 하면 뭔가 되겠다.’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직업군인이 되기 위해 3사관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웬걸, 육군소위로 임관하자마자 부대에서 수류탄 폭발사고가 났다. 수류탄을 집어서 멀리 던지려고 했는데, 아뿔싸, 미처 던지기도 전에 수류탄이 터져버렸다. 오른손을 잃은 것은 물론, 머리에 파편이 수십 개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것 자체가 다들 기적이라 했다. 기적이 그뿐이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두피 속에 박혀 있던 자잘한 파편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 난 머리는 나이가 먹어도 세지 않았고, 지금도 얼굴이 삼십대 부럽지 않게 팽팽하다. 천만다행으로 얼굴에는 파편이 하나도 날아들지 않았으니, 의수만 하고 나면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한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몸이 불편해진 직후 나는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느라 한순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목욕탕 가는 게 큰 고민이었다. 저마다 두 손으로 자기 몸 씻느라 야단일 텐데 나는 한 손으로 뭘 어떻게 하겠나 하는 생각에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구경났다는 듯 쳐다보는 눈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없는 돈에 혼자 여관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꾀를 내어 꼭두새벽에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문 열자마자 들어가니 그보다 좋을 수 없었다. 물 깨끗하지, 사람 없으니 맘 편하지, 그래서 신나게 씻고 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구경거리 되겠구나 싶었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그냥 슥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그들을 보며 예전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한 법이여.”

어릴 때 어머니께 많이 듣던 말이다.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 없어. 너만 똑바르고 너만 잘하면 돼. 그 말씀이 몸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내 생각만큼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바르게 살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저놈이 어디가 불편한지 어디가 부서졌는지 관심이 없다. 남들은 소 닭 보듯 지나가는 것을 괜히 나 혼자 고통이라 생각하고, 그걸 껴안고, 매일 짊어지고 다녔던 것이다. 훌훌 털어버리면 끝나는 것을, 실상 무엇도 나를 짓누르는 것이 없었는데 나 혼자 괜히 힘들어 했다. 그때부터 나는 목욕탕에 마음껏 다녔다. 사람이 있든 없든 탕을 들락거리고, 사우나에 가서도 양팔을 다리에 올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는다. 간혹 움찔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괜찮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가장 편해지는 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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