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고집 센 사람 하나와 똑똑한 사람 하나가 있었다.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다툼의 이유인즉슨, 고집 센 사람이 “4×7=27”이라 주장하고, 똑똑한 사람은 “4×7=28”이라 주장했다. 

답답한 나머지 똑똑한 사람이 고을 원님께 가자고 말했고 그 둘은 원님께 찾아가 시비를 가려줄 것을 요청했다. 고을 원님이 한심스런 표정으로 둘을 쳐다본 뒤 고집 센 사람에게 말을 하였다. 

“4x7=27이라 말하였느냐?” “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는데, 글쎄 이놈이 28이라고 우기지 뭡니까?” 

그러자 고을 원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7이라 답한 놈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놈은 곤장을 열 대 쳐라!” 
고집 센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놀리며 그 자리를 떠났고, 똑똑한 사람은 억울하게 곤장을 맞아야 했다. 곤장을 맞으면서 똑똑한 사람이 원님께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원님의 대답은 이랬다. 

“4×7=27이라고 말하는 아둔한 놈이랑 싸운 네 놈이 더 어리석은 놈이니라!” 

세상을 살다보면,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할 때도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다.

1963년 쿠바의 미사일 위기 때의 일이다. 쿠바의 미사일 위기는 미국의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의 승리보다는 소련의 ‘양보’를 강조하는 성명을 내라고 지시했다. 보좌관이 그 이유를 묻자, “만약 우리가 미국의 승리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소련 강경파의 입장을 강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련의 양보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온건파의 입지를 넓혀 줄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양보라는 것은 쉬운 말로 표현하면 져준다는 의미이다.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은 분명 다르다. 지는 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힘이 약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고 져준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분명 힘이 강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또 상호간에 화평을 위해서 취하는 행동이다.

엄마들이 딸과 다툴 때 항상 져주는 쪽은 엄마다. 엄마가 힘이 없어서 지는 것이 아니다. 져주는 것이지.

4월은 교회력으로 부활절이 있는 달이다. 기독교에서는 왜 그렇게 부활절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면 부활이라는 것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부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 즉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죽지 않고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자기 부인, 즉 져주는 것을 의미한다.

져주는 자만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즉 승리를 맛볼 수 있다. 부활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져줄 수 있는 것이다. 져준다는 것은 양보를 의미하며 이 양보의 미덕은 감사를 생활화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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