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

1~2면 기사의 출발은 사진 속 편지였습니다. 작은 정성 하나로 전국의 재소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눔의 삶에 동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름날의 교도소
딱히 빛나는 일상을 찾기 힘든 여름의 시작, 4년 만에 찾아온 월드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권태로운 하루에 단비가 쏟아지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감사나눔신문 임직원 또한 2002년 4강 신화의 기적을 막연히 염원하며 월드컵 이야기를 화제에 자주 올렸습니다. 이때 청송교도소(현재는 경북북부교도소로 불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짧은 편지이지만 나누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나눔신문 대표님께
하지가 지나고 연일 뜨거워지는 날씨와 월드컵의 열기로 더 뜨거워지고 있는 한여름의 길목입니다.”

문득 교도소의 여름은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고(故)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기억났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 글에 나오는 70년대의 교도소와 지금의 교도소는 분명 환경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80년대에 완공된 청송교도소에 에어컨이 있다는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더울 것입니다. 그런데 위 글과 청송교도소 풍경이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감옥 중의 감옥이라 불리는 청송교도소의 수용 시설은 독방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열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보통의 인내를 갖지 않고서는 뜨거운 여름, 좋은 기분으로 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참 미안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손꼽히는 산문 문학입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옥에서 편지 쓰기는 횟수와 분량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써야 합니다. 자연스레 진정성이 크게 느껴집니다.

청송교도소에서 온 편지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허황된 욕심으로 죄를 저질러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쁜 생각으로 죄를 짓고 이곳에 와서 많은 시간을 아무런 생각 없이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었는데 주변 동료가 보던 감사나눔신문을 한번 읽었는데 세상에서 감사할 일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사말 빼고 단 두 문장이 보입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세상에서 감사할 일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우연히 읽은 감사나눔신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감사나눔신문 임직원들은 움찔했습니다. 잊혀졌던 기억이 골문에 꽂히는 공처럼 쑥 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감사나눔신문 2010년 5월 29일자(9호)에 실린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담안(교도소)은 역시 인정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격리된 공간, 세상과 담쌓은 그곳에 ‘감사나눔신문’이 들어갔다. 신문을 본 재소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면으로 연결>

그들은 외롭다면서, 물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면서, 입소 전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던 정겨운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의 편지들을 감사나눔신문사로 보내온 것이다. 보내온 편지들은 지난날 가족들과 나눴던 정(情)을 추억하며 외로운 수형생활을 달래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내용이었다.”

참 미안했습니다. 초기에 시작되었던 교도소 감사나눔신문 보내기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2013년 11월 26일 경북북부제3교도소에 있었던 ‘나로부터의 변화-감사’ 특 강 모습입니다. 감사나눔신문이 전국 교도소에 배달될 것에 미리 감사합니다.

 

1+1제도
청송교도소에서 온 편지 다음 부분을 읽으면 이 분이 감사의 달인이라고 여겨집니다.

“늘 불평, 불만이 많던 이곳의 생활에서도 감사함을 느끼면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이곳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보낼 시간이 앞으로도 10여년 이상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감사함을 잊고 지내지 않도록 감사나눔신문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후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요. 이렇게 대표님께 편지를 쓸 수 있는 건강함과 서신의 자유마저도 저에게는 감사할 일로 여겨집니다.”

역시 마지막 문장에서 또 시선을 뗄 수가 없게 됩니다.

2011년 3월 16일자(28호)에 실린 기사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가 감사나눔신문 받아보기를 청했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에게 신문을 보내드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재소자와 출소자를 위해 선교활동을 벌이시는 이경희 영동가구 회장과 포스코ICT 등 독지가와 기업들이 본지가 운영하는 1+1제도(독자가 원할 경우 소외된 사람들에게 신문 한 부를 더 보내주는 제도)에 동참해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1+1제도’가 꼬리를 감추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군부대에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일상 감사에 도움을 주자
청송교도소에서 보낸 편지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밖에서 어디 이렇게 편지를 쓸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이 감사할 일로 풍부한 거리를 만들어 주신 감사나눔신문사의 모든 직원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부디 오랫동안 번창하셔서 좋은 신문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P. S 혹시 추가로 한 부 더 후원해주실 수 있으시다면 발송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교도소(矯導所)의 과거 이름은 감옥(監獄)이었습니다. 감옥은 말 그대로 가두고 감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옥(獄)’ 자를 보면, 이는 두 마리의 개가 사람의 말을 옥죄는 것입니다. 교도소는 말 그대로 잘 이끌어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여러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그 중에 감사나눔이 잘 정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교도소에 감사나눔신문을 보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개인 기존 독자는 1부 더 신청하셔서 1+1제도 동참 의사를 밝히시면 됩니다. 기존 독자가 아닌 경우 이 제도 취지에 동참하시면 신규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기업의 적극 참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으로 배달된 감사나눔신문이 전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게 해줄 것입니다.

곧 월드컵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또 행복을 찾을 것입니다. 일상이 답답하면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 빛나는 삶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재소자들에게는 그런 자유가 없습니다. 만기 출소할 때까지 단조로운 일상에 묻혀 있을 것입니다. 그 일상을 감사한다는 것, 그것만큼 위대한 발견은 없을 것입니다.

청송에서 온 편지의 이 구절이 또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늘 감사함을 잊고 지내지 않도록 감사나눔신문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후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요.”

감사나눔을 하고 계시는 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잠시 중단하면 감사 에너지가 떨어진다는 것 말입니다. 감사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는 그들에게 지속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감사나눔신문 보내기, 뜨거운 동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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