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교도소 쇠창살에서 피어난다

육군교도소 소장으로 취임해 피운 감사나눔 꽃을 2014년 국군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이어갔던 초대 국군교도소장 조용욱 님.

 

지난 7월 15일 발행된 감사나눔신문 204호에 ‘청송교도소에서 보내온 편지-감사나눔신문 보내주세요’가 실렸습니다. 세상에 극도의 증오를 품었을 법한 재소자가 감사나눔신문 구독으로 일상의 감사를 실천하게 되었는데 사회공헌을 통해 더 많이 보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호응해 여러분들이 감사나눔신문 보내기에 동참해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리고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재소자 생활 내내, 출소 후 가질 희망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곰곰이 돌이켜보니 국군교도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감사나눔 훈풍이 한창 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7월 10일부터였습니다. 중심에 있었던 초대 국군교도소 조용욱 예비역 중령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감사의 힘을 느끼는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국군교도소에 감사나눔 훈풍이 지속적으로 불 수 있도록 많은 도움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주)

교도소 업무를 시작하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바람이 차가운 교도소 담벼락 아래에 노란 민들레가 꽃을 피웠다. 사형을 선고 받고 10년째 복역중인 사형수 방에는 쇠창살 너머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시간이 더해갈 수록 긴 그림자만 남아 아쉬움만 더해 가고 있었다. 사형수는 지난 여름 특식으로 나온 자두를 먹고 씨앗을 남겨두었다가 봄기운이 전해져오자 급한 마음으로 화분을 내어 씨앗을 심었다. 그러자 제법 어린 가지가 자라나 잠깐이나마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려고 창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전역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나는 마지막 근무지로 대전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이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갑자기 육군본부로부터 육군교도소(현 국군교도소)로 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유도 묻지 않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일주일 뒤 취임식도 없이 육군교도소장 업무를 시작하였다.

수용자들이 너무 무서워
말로만 듣던 교도소 수용자를 대하면서 사람이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들이 사형수라서 폭력 전과를 가져서가 아니라 교도관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아 민원을 내고 그때마다 관련 기관에 조사를 받는 것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를 보면 교도관이 수용자를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실상은 수용자가 상전이었다. 상전도 그런 상전은 없을 것이다. 밥맛이 없다, 춥다, 교도병이 째려봤다, 교도관이 반말을 했다, 취침시간에 축구 중계방송을 보게 해 달라 등등 시도 때도 없는 불평불만과 민원들은 지난 25년의 군대생활보다 더 힘든 생활이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버스를 타고 5시간이나 걸려 면회 오는 부모에게 감사의 인사보다는 ‘왜 영치금을 넣지 않냐’며 화를 내는 수용자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에 인터넷에서 감사를 강의한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전화하였다. 군교도소에 책정된 강사료는 없지만 한때 잘못으로 들어와 뚜렷한 목적없이 불평불만으로 생활하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렇게 해서 ‘100감사로 행복해진 지미이야기’ 저자인 유지미 강사를 알게 되었고 육군교도소에 감사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그들이 ‘감사’를 건넸다
강연 이후 ‘감사릴레이’ ‘100감사 쓰기’ ‘감사일기’를 쓰게 하고 면회실 출입구에 수용자가 볼 수 있도록 “먼 길 오신 사랑하는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세요”, “먼 길 돌아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등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곳곳에 부착하였다.

교도소 울타리를 둘러싼 시커먼 잣나무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연산홍, 왕벚꽃나무, 구절초 같은 꽃을 심어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품게 하였다. 수용자들의 분노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사물놀이, 서예, 서각을 가르치고 축구와 족구 경기로 희망리그를 만들어 포상하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불만이 가득했던 수용자들에게서 감사와 희망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부모를 원망했던 수용자들의 입에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세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에게 늘 불평으로 반응했던 수용자가 “세심한 배려에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상습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넣던 수용자가 모범수 표창을 받게 되었으며 출소 후에 변화된 삶의 고백을 담은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행복한 교도소 생활
1년이 지나 육군교도소에 색다른 무대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던 수용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정 교화 위원들에게 감사를 전하겠다며 ‘감사나눔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수용자들은 춤과 노래로 만든 뮤지컬과 감사편지 낭독, 감사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수용자들이 직접 만든 서예 및 서각, 미술작품 등 감사 작품들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화분에 자두 씨앗을 심어 창가에 올려놓던 사형수는 원예반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립생물자원관으로부터 지원받은 자생식물들을 재배하며 쓴 관찰일지와 함께 일상 글을 묶어 먼 훗날 사형수에서 형이 감면되어 사회에 나가면 책으로 출간하도록 하였다. 

수용자의 불평불만을 줄여보고자 시작한 감사운동이 민원을 대폭 감소시키고 사형수에게도 희망을 갖게 하는 변화를 가져와 육군교도소 창설 이래 처음으로 국방부장관 부대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시작한 교도소 생활이었지만 감사로 행복한 생활이었으며 내가 좀더 일찍 감사를 알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감사는 행운이었다.

글=초대 국군교도소장 예비역 중령 조용욱

소중한 글입니다.
"좋아요" 이모티콘 또는 1감사 댓글 달기
칭찬.지지.격려가 큰 힘이 됩니다.

저작권자 © 감사나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