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관계다-그래티튜드 경영’ (25)

기업 경영에서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곧 늘 오답과 실패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실패는 기업에 적지 않은 리스크를 안겨주기 때문에 모든 경영자가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리스크가 있어야만 새로운 기회도 있다. 급격한 성장을 경험한 적지 않은 경영자들이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존 질서가 깨지고 그것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된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해보면 경영에서 맞닥뜨리는 오답과 실패, 리스크는 참으로 다루기 난감한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회피해야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혁신 기업들이
‘실패 파티’를 하는 이유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절체절명의 간절함 속에서 이루어져왔다. 풍요로운 자원이 없던 한국 기업인들은 한정된 자원,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오류는 곧 ‘실패’로 규정됐고, 그것은 ‘성공의 반대말’과 동일한 의미였다.

그러나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실패라는 것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실패를 해야만 성공의 길도 열릴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계 경영 이론의 흐름 역시 이러한 실패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듀크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심 싯킨(Sim Sitkin) 교수는 ‘똑똑한 실패’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했으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만약 그것이 기업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면 이는 ‘똑똑한 실패’라는 이야기이다. 이후 ‘창조적 실패’, ‘칭찬받아 마땅한 실패’라는 다양한 개념들이 만들어졌다. 모두 실패의 이면에 있는 도약과 성숙의 계기를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긍정적 의미의 실패에는 한 가지 태도가 전제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실패를 감사하는 태도’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3M이나 P&G 등의 기업에는 실패상(賞)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실패 파티’라는 것도 존재한다. 실패를 치하하고, 감사하고, 그것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그것에 감사하고 즐기는 것은 실패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를 실패로 놔두면 우울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 실패를 감사와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면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해 발전하게 된다. 또한 상황을 보다 냉철하게 보고, 더 나아가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까지 얻게 된다.

 

최악의 투자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2006년에 국내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 투자기관 EDB, 현지 반도체 후공정업체와 3자 합작으로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첨단 후가공 기술인 범핑(bumping) 공장을 설립했다. 이전까지는 싱가포르에서 웨이퍼(wafer)를 만들어 대만으로 보내면 대만에서 범핑을 하고 다시 싱가포르에 와서 후공정과 테스트를 해왔다. 모든 작업이 한곳에서 이뤄지지 않아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한 3자 회사는 합작을 통해 서로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따라 새로운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네패스’라는 회사와 우리의 기술을 알리는 데만 2~3년 걸렸다. 물론 그 후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메이저급 회사들로부터 수주를 받으며 흑자를 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났다. 공장의 생산 능력이 부족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며 기존 고객들에게 같은 비율로 물량을 줄여서 공급하는 한편, 증설을 서둘렀다.

그렇지만 일부 업체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를 위한 물건을 제조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물량이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증설되고 나자 기존 고객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불만이 쌓였던 고객들이 다른 공급처에서 물건을 공급받기 시작해, 결국 우리 회사는 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반도체 관련 사업은 몇 달 만에 신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마침내 싱가포르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네패스 경영 역사상 최악의 투자 실패로 기록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고객과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선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호황일 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동률이 저조해서 영업 부서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물량이 너무 많은 상태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실패에도 교훈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후 싱가포르 생산 장비의 2분의 1을 대만 업체에 매각하고, 나머지 반은 한국으로 이전한 후, 다시 중국에 신설 법인을 세워 이전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12인치 범핑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사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향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울한 감정으로 실패를 봤을 때는 그 안에서 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모두 사라진다. 일단 마음속에서 그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려는 행위조차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실패에 대한 수용성과 개방성이 높아지고 그 안에서 교훈을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다. 어두운 밤길이라며 아예 가려고 하지 않는 것과 어두운 밤길임에도 조명을 들고 그곳을 탐험하려는 적극성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듯 실패에도 감사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은 실패와 위기를 새로운 터닝 포인트로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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