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감사를 만난 순간

 

눈을 떴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와 코끝을 맴도는 소독약 향기, 띠띠띠띠 이명처럼 맴도는 기계 소리.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는 낯선 이의 나직하면서도 반가운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은 지금은 4월 30일 일요일 14:00 구요. 여기는 00병원 중환자실입니다. 혹시 본인 성함 기억나시면 써보실래요?” 

날 내려다보는 낯선 이는 중환자실 간호사였다. 그동안 시체처럼 굳어있던 손가락을 움직여 쭈볏쭈볏 내 이름 석 자를 침대보에 적었다. 글을 알게 된 이래 시험지에, 노트에, 심지어는 각종 카드 영수증에 무수히 많은 내 이름을 써 넣었었지만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 로 내 이름을 적어 보는 듯한 느 낌을 받았다.

며칠째 지속되던 감기기운으로 몸이 피로했으나 단순한 몸살로 치부했던 게 실수였다. 급기야는 나중에 한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버겁고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한밤중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실로 실려 갔고 쇼크에 빠져 몇날 며칠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가 눈을 뜬 게 그날이었다.

급성심근염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눈을 뜬 내가 쓴 첫 글씨. 내 이름 석 자를 머뭇머뭇 쓰면서 나는 다시 내 인생으로 소환당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때 당시엔 내 힘으로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오직 기계에 의지해 존재를 지탱하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가장 아프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던 그때의 내가 사랑스럽다. 나는 오직 삶에서 내 존재가 아직 말소되지 않았다는 것에 큰 안도를 느꼈고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깊은 위안과 감사를 느꼈다. 만약 죽음에 가까이 닿을 정도로 아프지 않고, 평상시처럼 타성에 젖어 안일하게 살아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깨달음이고 감사함이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도 간절하게 감사함을 느꼈던 때는 내가 가장 힘없고 나약하게 누워있던 그 시간 그때였음을. 끈질기게 소생한 내 자신의 생명력과 나를 위해 걱정해주고 울어준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과 나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의료진들에게, 그리고 내 믿음과 기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던 그때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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