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당의 건강칼럼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습니다.  누구나 건강하길 원하지만 바램처럼 평생 건강한 이는 드뭅니다. 병은 삶이 맞닥뜨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한 사람의 삶 속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병(病)이라는 필연공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크든 작든, 길던 짧던.  이것이 병을 바라보는 동양의 시선입니다.  

사람은 천지자연의 구현체입니다.  자연이 피고지듯 삶 또한 피고 집니다.  한 사람의 삶은 유한(有限)하지만 천지자연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시간은 동행(同行)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자연의 엄정한 순환에 관여하려 하겠습니까?  당연히 병(病)의 시간에 주목하기보단 건강한 시간을 연장하거나 확대하는 게 순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동양에서 다양한 섭생법(攝生法)과 양생술(養生術)로 꽃 피웠습니다.      
서양의학의 출발점은 해부학입니다. 사체를 해부해 보니 병으로 사망한 주검체는 일반 주검체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병을 안락함을 벗어난 상태(dis+ease) 또는 규칙적 질서에서 벗어난 상태(dis+order)로 파악합니다.  의학의 방향도 생의 과정 중에 발생한 ‘dis’(비정상,불균형)의 상태를 개선시키거나 제거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외과적 수술과 약학의 발전은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의학의 영역이라 규정짓는 건 서양의 의학관입니다.  

관점이 다르니 풍경이 다릅니다.  풍경이 다르니 도달하려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학은 과학과 결합해 첨단의학으로 성장했지만 동양의학은 딱히 오천년 전이나 지금 큰 차이가 없습니다. 누가 더 옳고 현명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명국가의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첨단의학의 혜택을 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질병을 멀리하고 삶의 질을 확대하는 동양의 섭생법과 양생술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섭생과 양생의 의미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균형입니다.  치우침을 덜어내고 모자람을 채워가는 길은 회복입니다.  아무도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균형을 회복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선택과 수행의 결과입니다.  궁극의 지향점은 조화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천지와 합일(合一)한 일체자(一体者)로 선 인간의 참모습을 형상화한 로고가 균형회복 자연학교의 상징입니다.  
그럼에도 균형회복 자연학교의 일관된 주제는 몸입니다.  몸 들여다 보기, 몸으로의 여행, 끝내 다다를 몸의 통찰(洞察)입니다. 

Body Insight.  
몸이 없는 영혼은 한낱 바람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위대한 영혼도 가녀린 몸이라도 있어야 드러날 수 있습니다.  깨달은 이들 중엔 때로 정신의 위대함에 비해 몸을 하찮게 여기는 이가 있습니다.   자학과 고통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여기는 그룹도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정신이 한갓 몸에 매인 존재라는 걸 드러낼 뿐입니다.  
Body Insight!  몸의 통찰이 궁극에 닿으면 거기 정신이 담겨있음을 발견합니다.  쪼개고 쪼개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 원형에 하나의 기운이 홀연히 남으니 이를 정신(精神)이라 이릅니다.  이렇듯 몸의 궁극의 드러냄(顯現)이 정신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의 정신세계가 당신의 몸에 다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체질적 특성은 장기(臟器)의 불균형에 기인합니다.  체질마다 차이를 보이는 일반적인 정신경향은 결국 몸에서 온 것입니다.  이렇듯 몸으로의 통찰이 진정한 회복에 닿아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정신을 회복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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