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일 의학박사의 건강이야기

 

성(性)은 호르몬이 좌우한다. 남자와 여자는 해부학적인 구분이고, 남성과 여성은 성적인 구분이다. 남자에게도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고, 여자에게도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다 분비된다. 단지 남성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남성이 되는 것이고, 여성 호르몬이 많으면 여성이 되는 것이다. 

여성 호르몬의 대표적인 것이 ‘에스트로겐(estrogen)’과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며 이들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는 변화에 따라 여아가 사춘기 소녀로, 월경을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임기의 성숙한 여인으로, 경도가 끊어지는 폐경기를 거쳐 노년기에 접어드는 변화를 차례로 일으키는 것이다.
여자의 일생 중에 가장 현저하게 생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건강과 관련이 있는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는 폐경기 또는 갱년기라 할 수 있다. 대개 50세 전후해서 약 1년 내지 3년에 걸쳐 천천히 그러나 뚜렷하게 변해 간다. 여성 호르몬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분비가 감소하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셈이 되는데, 바로 이러한 변화가 많은 증상을 유발시키게 된다. 첫째, 월경의 중단이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점점 적게 분비됨에 따라서 월경이 불규칙하게 되기도 하고, 자궁 점막의 증식도 줄어들기 때문에 월경량도 줄어들고, 무배란(난자가 배출이 안 되는) 주기가 자주 오게 되며, 월경을 안 하는 달이 점점 늘어나다가 아주 없어지게 된다. 월경이 계속해서 일년간 나타나지 않으면 비로소 갱년기의 이양과정이 완전히 끝났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둘째, 열성 조홍(熱性潮紅, Hot Flush)이다. 특히 얼굴과 몸이 열이 나는 것처럼 화끈거리는 것이다. 이런 화끈거리는 조홍 증상은 하루 중 오후에 더 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날씨가 더울 때라든가, 더운 음식을 먹고 마실 때나, 혹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일 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특히 밤에 식은땀을 많이 흘리며 불면증에 걸리기도 하고 이 때문에 몹시 피곤한 나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각 문화권마다 또는 민족마다 좀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미국이나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폐경기에 접어든 여성의 80% 이상에서 조홍 증상을 경험하는데 비해, 동양의 여성들에게서는 단지 10% 내외에서만 조홍을 경험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셋째, 골다공증이다.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여성 호르몬 분비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골다공증의 정도와 빈도가 갑자기 늘어난다. 궁극적으로 폐경기 이후의 여자들 중 약 25%에서 골절상을 당하게 되거나 척추가 찌부러져 등과 허리가 굽거나 키가 작아진다. 골다공증은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많이 피거나, 운동부족, 칼슘 섭취 부족, 햇빛을 별로 안 쪼이는 생활, 너무 고기를 많이 먹거나 짜게 먹는 경우, 커피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서 더 흔하게 생긴다. 넷째, 질 분비물 감소이다. 질강 내 점막에서는 정상적으로 분비물이 나와서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특히 성교 시에는 더 많은 분비물이 나와서 마찰에 의한 불쾌감이 전혀 안 생기도록 윤활을 하여 준다. 그런데 폐경기에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되면 질 점막이 얇아지고 위축되고 건조하게 되어 성교 시에 불쾌감과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다섯째, 몸에 털이 많이 난다. 폐경기를 맞는 모든 여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에게는 수염도 눈에 띄게 생기고 다리나 몸에도 진한 털이 많이 생겨나는 수가 있다.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작용이 활발해져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섯째, “빈 둥지 증후군”이다. 이것은 호르몬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생기는 증상은 아니지만 흔히 폐경기와 때를 맞춰서 동시에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다. 우울증, 허탈감, 가치관의 상실 등을 경험한다. “이제는 여자로서 여성을 잃었구나” 하는 허전함, 남편은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에 묻혀 허우적거리며 집안에 자상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자식들은 혼자 자란 듯 각각 제 갈 길을 가버렸고,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며 살았던고”하는 회의적 감정 등이 한데 얽혀, 마치 알을 까서 먹이를 물어다 기껏 키워 놨더니 새끼들이 훌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혼자서 빈 둥지에 멍하니 앉아 있는 어미 새에 비유하여 “빈 둥지 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났다. 일곱째, 몸에 부기가 생기고, 체중이 늘어나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심리적 불안감이 생기고, 성욕의 감퇴를 경험하게 되는 것도 폐경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 들이다.

폐경기 여성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스스로 챙겨야 할 일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한다. 건강을 해치는 요소는 세 가지가 있다. 해야 될 것을 하지 않는 것, 해선 안 되는 것을 하는 것, 하긴 하는데 제대로 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건강의 비결은 “해야 될 것을 하되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먹을 것, 제대로 운동할 것, 제대로 잠잘 것, 제대로 마음 다스릴 것(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마음을 비우는 일) 등 올바른 생활습관이 진짜 비결이다. 오늘처럼 서양의학, 동양의학, 대체의학이 수 천 가지의 요법을 홍수처럼 쏟아 내놓고 있는 시점에서는 나를 위해 나에게 맞는 ‘맞춤형 처방’을 내줄 전문가를 찾는 게 가장 현명할 것이다. 

환자를 위해서 ‘어떤 처방을 해 줄까’를 선택하는 것은 전문가의 지혜이지만, ‘어떤 전문가를 찾아갈까’하는 것은 환자의 지혜이다. 건강은 역시 지혜로운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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