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원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찾는 것”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교향곡 9번 ‘합창’을 완성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그는 그 곡을 초연할 때 연주가 끝난 것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다 뒤돌아서서 감동적인 공연에 열광하는 객석을 보고서야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성공했음을 알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조차 들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한 그를 사람들은 ‘음악의 성인’이라 불렀습니다.

음악가에게 소리의 아름다움을 구별해 내는 귀가 생명이듯이 색채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구현하는 화가에겐 눈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두 눈을 잃고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며 어둠에 굴하지 않는 희망을 전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 화가 박환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소개되었던 그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옮겨봅니다. <편집자 주>


박 화가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지만 한순간도 손에서 붓을 놓은 적은 없다. 성인이 된 뒤 1980년대부터 동양화를 그려 팔았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화풍을 구축했다.

40여년의 화가 인생에서 총 네 차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했고 두 차례의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다. 여덟 번의 단체 전시회와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2013년에는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초청돼 세계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리며 중견화가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인생을 바꾼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트럭에 치이는 큰 사고를 당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영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그의 작업실을 정리하고 갖고 있던 미술재료도 대부분 버렸다.

그는 사고의 충격으로 여러 번 생명을 끊으려 했다. 박 화가는 당시의 고통을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없으니까 살 이유가 없잖아요. 하루라도 일찍 죽는 방법을 고민했죠. 동생 팔을 잡고 매일 걷던 집 앞 도로가 있었는데 하루는 차도에 뛰어들려고 시도했어요. 마음속으로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하고, 하나, 둘, 셋을 속으로 세다가 ‘이때다’ 싶었을 때 동생이 팔을 잡아끌며 말했어요. “초록불이야, 오빠. 이제 가자” 그래서 정작 시행은 못 했어요.” 한번은 그가 11층 아파트의 거실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던 것을 가족들이 발견해 붙잡기도 했다.

가족은 그가 희망의 끈을 놓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3년 가까이 알리지 않고 그저 회복되는 과정이라고만 설명했다. 화가인 그에게 이제 평생 앞을 볼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을 감당하게 하기 싫었던 것이다. 병원에 가면 가족들은 ‘눈이 보일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의사 앞에 몰래 내밀었다.

열심히 치료받으며 3년여를 버틴 그는 2016년에야 자신이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고 이후 처음 여는 개인전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박환 특별전’(2017)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시회 담당자와 동생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그 뒤 몇 달간 다시 오열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고 가족이 말을 걸면 화를 냈다. 사고 이후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절망감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머니와 여동생, 아내와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화가들과는 달리 시각장애인인 그의 작업방식은 독특하다. 스케치 작업이 한창인 캔버스엔 십여 개의 핀이 꽂혀 있고 굵기가 다른 무명실이 이리저리 붙어 있다. 꽂아놓은 핀 사이 간격으로 거리를 파악하고 실을 붙여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가 연필 대신 착안해낸 스케치 방법이다. 물감은 손으로 만져 기름기의 점도로 색을 구분한 뒤 화폭에 칠한다. 그렇게 그는 캔버스에 물감칠과 함께 나무껍질, 청바지 조각, 무명실, 진흙 등을 붙여 입체감 있는 그림을 그린다.

박 화가의 가장 큰 아픔은 작품을 완성하고도 본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답답함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앞을 볼 수 있다면 먼저 햇빛과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보고 싶은 건 내가 그린 그림들이에요. 머릿속의 구상대로 그려졌을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잘 표현이 되었는지 지금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막말로 미칠 노릇이죠.”

자신의 작품을 볼 수 없으니, 한참 작업한 뒤에도 지금 그림이 완성된 것인지 더 칠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설 때가 많다. 그저 몰두했던 작품에서 마음이 떠날 때, 그때가 그림의 완성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매일 온몸에 물감을 뒤집어쓰며 작업에 매달렸던 그는 7년간 무려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에 다녀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얻고 희망을 발견했다.

인생은 늘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큰 계획이나 대단한 욕심이 없다. 다만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도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박 화가는 말한다. “예술적 호평은 바라지도 않아요. 제 그림을 보고 누군가 감동을 받고 희망을 얻는다면 그게 기쁜 일이죠. 희망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는 거니까요.”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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