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언의 마음산책

‘공감’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가 그것이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서 예쁜 접시에 고기를 담아 대접했는데 두루미는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초청해서 주둥이가 좁고 긴 병에 물고기를 넣어 내놓았다. 하지만 여우 역시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서로 다른 주둥이에 맞지 않는 그릇이 그 한 가지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둘의 전혀 다른 식성 때문이었다. 두루미는 물고기를 좋아했고 여우는 고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부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소통과 공감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되었다. 소통과 공감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소통 없이 공감할 수 없고, 공감 없는 소통은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명의 개그맨이었던 유재석이 국민 MC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맞장구나 호응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며,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통념까지 바꾸어 놓았다. 번지르르하게 자기 말만 늘어놓는 달변가보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맞장구치며 호응을 잘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대화를 할 때 경청과 호응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부른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보다는 늘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인디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함부로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공감능력을 키우라는 얘기다.

캐나다 토론토의 초등학교에서는 3주에 한 번씩 <공감의 뿌리>라는 수업을 진행한다. 아직 첫돌이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교실로 초대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그 아이의 기분을 맞춰보게 하는 수업이다. 3주에 한번쯤이라도 나와는 전혀 다른 처지에 있는 타인의 기분과 마음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공감능력을 키우는 훈련 프로그램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중 상당수가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학교나 직장 등 조직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따돌림이나 폭력, 그로인한 갈등과 범죄까지, 그 모든 것이 물질문명의 초고속 성장 속에서 공감의 여백이 사라지고 ‘자기중심주의’가 심화되면서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기 때문에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인간은 남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행동할 때처럼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세포 ‘거울 뉴런(mirror neuron)’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조금만 신경 쓰고 배려한다면 누구나 공감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바야흐로 봄이다. 만물이 초록을 끌어올리고 온갖 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창궐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아야하는 비현실적인 봄이 되고 있다. 조금은 우울한 이 봄날을 ‘공감력’을 키우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문학성이 높은 소설을 읽으면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시간, 책장에 잠들어 있는 책 한 권을 꺼내들고 공감능력을 키우는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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